'5·18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 거리로 나온 시민들

by 11기김사랑기자 posted Mar 04, 2019 Views 15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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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 국회에서는 5·18 진상 규명 대국민 공청회가 진행되었다. 자유한국당 이종명, 김진태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 자리에는 평소에 5·18 북한 개입설을 주장해왔던 지만원도 초청되었으며, 자유한국당 김순례, 이완영, 백승주 의원 등도 참석하였다.

 

이곳에서 이종명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이 폭동임을 주장하였으며 김순례 의원은 5·18 유공자를 이상한 괴물 집단이라 칭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태 의원은 5·18 문제에서 만큼은 우파가 물러서면 안 된다고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지만원은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게릴라전이라는 발언을 하였다. 그들의 발언은 가장 청렴해야 할 장소인 국회에서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을 부정했다는 사실 자체로 큰 비난을 받았다.

 

김진태 의원은 망언 이후 한 차례 광주를 방문하여 큰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자유한국당 망언 의원들은 유공자 명단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공자의 공개를 원하는 그들의 의견에 김후식 5·18 만주화운동부상자 회장은 기념문화재단 지하실에 유공자 4,000명 명단이 가나다순으로 공개되어 있으며 새로이 무엇을 하라는 것이냐는 입장을 밝혔다. 김진태 의원은 이미 공개되어 있는 4,000명의 유공자와 더불어 아직 공개되지 않는 400명까지 모두 공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5·18 유공자 명단 공개는 지난해 12월 공개 불가 판결을 받았다.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5·18 유공자 명단과 공적 사항은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지난 16, 광주 항쟁의 중심인 광주 금남로에서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 망언을 규탄하는 광주범시민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날 오후 4시부터 진행된 집회에는 광주 시민과 더불어 여러 시민단체가 모여들었고 이용섭 광주시장, 장휘국 광주시광역시 교육감 등 광주를 지역구로 둔 여야 국회의원들도 자리에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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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김사랑기자]


차가운 바람이 부는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시민들은 금남로를 찾았다. 주최 측 추산 1만여 명이 되는 많은 인원이었다. 시민들은 자유한국당과 의원들에 사퇴를 요구하는 글귀가 쓰인 팻말을 들며, 목소리를 냈다. 단상 위에서 이용섭 광주시장은 “518은 법적, 역사적으로 검증받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이며 더 이상 폄훼되고 왜곡되는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역사 왜곡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장휘국 광주 교육감은 “5·18의 진실과 역사가 한국당 등 못된 무리들에 의해 악용되지 않도록 역사 왜곡 처벌법을 즉각 제정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이어서 다른 인사들도 5·18 망언을 한 의원들을 비판하며 사과와 제명을 요구하였고 시민들은 이에 호응하며 팻말을 들어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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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김사랑기자]


집회 중간에는 공연이 이루어졌고 5·18 민주화운동 당시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구호를 외치며 한 시민은 참담함을 호소하였으며, 5·18 폄훼 논란에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보였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시민단체는 5·18 왜곡 처벌법에 관한 제정 서명을 받았다. 또한 한 쪽에서는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을 보였다. 집회에 마지막은 자유한국당 의원 3명과 지만원의 사진, 그리고 자유한국당의 해체와 의원들의 퇴출 글이 쓰인 대형 현수막을 찢는 것으로 집회는 마무리가 되었다. 시민들은 집회가 끝난 후 거리행진도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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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김사랑기자]


자유한국당 세 의원과 지만원이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명백히 사실인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을 부정하고 허구를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1996년 고등법원은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5·18은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수호를 위하여 결집을 이룬 것이라 규정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시작점이었으며 후에 1987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앞서 이날 오후 1, 극우 보수단체 회원 200명은 금남로 4가에서 5·18 유공자 명단공개를 요구하는 집회와 행진을 진행하였으며 충돌 없이 마무리되었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정치부=9기 김사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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