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史천리, 조선 창덕궁의 천리의 역사를 한눈에 보다

by 4기박예은기자 posted Jun 02, 2017 Views 19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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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리]'천 리의 역사를 한눈에 본다'는 의미가 담긴 동아리 이름을 사용하는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의 유일한 역사 자율동아리이다. 천리는 자율적으로 계획하여 활동하는 것이 특징이고 계획에 따라 역사 유적지 답사 혹은 박물관 탐방을 한 후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나서 동아리원들, 그리고 교내 역사과 선생님들과 피드백을 나누는 활동까지 진행하고 있다. 이번 활동 장소는 조선 5대 궁궐 중 하나인 창덕궁이었다. 날씨도 많이 화창해졌으니 이번 달엔 함께 궁궐을 답사하러 가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답사활동 장소로 창덕궁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곳은 우리가 스스로 돌아다니며 배움을 얻는 것보다 해설사 선생님과 함께 다니며 배움을 얻는 것이 더 뜻깊다고 생각되어 창덕궁 곳곳을 해설사 선생님과 함께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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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박예은기자]


<활동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 및 느낀 점>

 창덕궁은 1405년 태종 때 건립된 조선왕조의 왕궁으로 처음에는 법궁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으로 창건했지만, 이후 임금들이 주로 창덕궁에 거주하면서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다. 인정문을 통과하고 나면 창덕궁의 메인 공간인 인정전이 위치하고 있다. '어진 정치를 베푸는 곳'이라는 의미로 인정전이라고 이름하였고,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인정전 일대를 둘러보며 아쉬웠떤 점은 땅에 깔려있는 박석이 너무 새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는 일제시대 때 일본이 기존에 깔려있던 박석을 전부 거둬내고 잔디를 심었었기 때문으로 지금은 그때의 박석들을 깔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조선시대 때의 박석이 모두 남아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래의 사진과 같이 고리가 달려있는 박석은 조선시대 때의 박석으로 날씨가 너무 덥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고리를 이용해 천막을 치는 등 다용도로 쓰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창덕궁과는 다르게 종묘의 정전 앞 조정에 깔린 박석들은 다행히도 조선시대의 것들이 많이 보존돼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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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박예은기자]


 답사 후 동아리 친구들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가장 많은 친구들이 이야기했던 것은 대조전에 있는 흥복헌에서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곳에서는 우리나라 조선의 국권이 넘어가는 한일합병조약을 맺었다. 우리는 흥복헌에서 벌어진 그 참담한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그때 당시의 고종을 비롯한 사람들이 얼마나 가슴 아파했을지 눈앞에 그려져 우리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해설이 모두 끝난 후에는 삼삼오오 모여 자유롭게 창덕궁을 거닐면서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았다.

 보다 익숙한 장소이기에 답사할 때 부담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생각보다 마냥 부담이 적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역시 모든 유적지에는 수준이나 역사의 깊이가 얕고 깊은 것 없이 모두 깊고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가을이 오면 창덕궁도 빨갛게 노랗게 물이 들 텐데 그때 다시 와서 창덕궁 후원까지 답사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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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박예은기자]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경제부=4기 박예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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